배경과 존재감, 그 사이 어디쯤 | 이승환 원더풀 우만은 수원 월드컵 경기장 건너편 좁은 골목길에 지은 상가주택이다. 보림 소장이 대부분의 과정을 이끌었기에, 나에게는 우리 사무실이 만들어낸 집이지만 비평가의 시점으로 조금은 객관적이게 바라볼 기회이기도 하다. 1970년대 한국은 대규모 택지개발로 아파트 공급이 서서히 주택시장의 주류로 성장해가던 시절이었는데, 한편으로는 민간 영세 건설업자에 의해 몇 채씩 똑같은 집들이 서울과 수도권의 골목에 들어서고 있었다. 주로 붉은 벽돌을 외장 재료로 사용하고, 낮고 장식 있는 흰 난간이 두드러진 3층 집들이 대부분이다. 거의 완성된 양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런 집들은 지금도 여전히 밀도가 낮은 구도심의 뒷골목 풍경을 지배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집값이 조금 더 높은 모퉁이 집들을 기점으로 신축과 리모델링 같은 변화의 조짐이 서서히 엿보이기 시작한다. 원더풀 우만은 이런 도시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다. 글로는 모난 소리를 종종 하는 바람에 가끔 원치 않는 이목을 받기도 하지만, 건축은 태생적으로 밋밋하게 밖에는 할 줄 모르는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는 우리다. 때문에 우리의 건축은 쉽게 배경이 되기도 하고 그러는 와중에 주변의 풍경과는 결이 다른 텍스처에 힘입어 존재감을 살짝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서로 다른 두 방향 사이의 긴장감 서린 균형이 우리 건축이 지닌 차별점이라고 생각하고 이 프로젝트를 바라보기로 한다. 수영장이라는, 이 규모의 건축에서는 유별난 아이템이 들어가지만 외형적으로는 흔히 보이는 4층의 다가구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이다. 그러나 1, 2층은 앞으로 건축주가 꿈을 펼칠 요량으로 만든 근린생활시설이고 3, 4층은 주택과 수영장이라는 건축주만의 사적 공간이기에, 건물을 두 층씩 묶어 수평으로 분절하는 데 망설이지 않을 수 있다. 분절된 윗부분은 필요한 창문과 테라스 외에는 어떠한 꾸밈이나 덧붙임도 없다. 박공의 형상은 주변의 맥락과는 딱히 맞지 않지만, 4층이라는 상대적으로 커다란 볼륨을 거리의 눈높이에서 조금이나마 낮아 보이게끔 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수영장 내부에 공간감을 부여하는 장치로서 선택했다. 2층의 목재 덧창은 기본적으로 수평 분절을 강조하면서도, 안을 보여줄 듯 말 듯한 투과성과 열리고 닫히는 가변성을 통해 협소한 골목에 특별한 여유와 생동감을 부여한다. 더도 덜도 아닌 주름 그 자체다. 단순하지만 고유의 깊이감과 텍스처를 가지고 있기에 병풍처럼 거리에 대한 배경이 되는 동시에 은근한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핵심 아이템이 된다. 형태와 볼륨에서 오는 도드라짐을 재료와 색상의 동질성으로 완화시키자는 것이 보림 소장의 또 다른 전략이었다. 요즘 생산되는 벽돌 중에서 주변 옛날 집들의 벽돌색과 유사하면서도 자체적으로 아름다운 색상을 가진 벽돌을 먼저 찾고, 줄눈 색을 이에 맞췄다. 그리고 창호 프레임과 금속 디테일에 도색할 페인트의 컬러 칩을 고르고 마지막으로 목재 덧창과 슬라이딩 문의 스테인 색을 매칭했다. 얼핏 보면 하나의 색으로 마무리한 단정한 배경과 같은 건축으로 보이지만, 조금 더 다가서면 벽돌, 금속, 나무와 같이 서로 바탕이 다른 재료들이 각각 다른 표면의 질감과 반사도를 드러내며 통제 가능한 선에서 이질감을 보여준다. 요컨대 재료와 색상을 통해 주변과의 관계에서 일차적으로 동질성을 찾고, 다음으로 우리 건물 안에서 색상의 통일성으로 단정함을 갖춘 뒤에, 그 안에서 미묘한 이질감으로 존재감을 부여하는 전략이다. 우리가 말하는 배경은 그 자체로 사람과 조경, 무작위한 활동의 배경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네의 풍경이라는 좀 더 큰 배경으로 편입되기를 바라는 의지도 포함하고 있다. 덧붙여 역설적이지만 그 와중에 조금은 눈에 띄는, 하지만 그리 과하지 않은 건축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꽃봉오리를 보라 | 전보림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사실 달가운 일에 갖다 붙이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좋은 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원더풀 우만에 대한 글을 시작하는 지금 도저히 그 말을 떨쳐낼 수가 없다. 지난 「SPACE(공간)」 643호에서 내가 다른 용도는 몰라도 주택을 「SPACE」 같은 도마에 올리는 일은 영 꺼림직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또다시 주택을 싣게 됐다. 그동안 우리가 주택들만 설계했다면 덜 억울하기라도 할 것이다. 카페도 했고, 사옥도 했고, 상가도 했건만, 왜 또 하필 주택이란 말인가. 그나마 이번엔 아래 상가가 붙어있긴 하다. 그러나 주택임은 분명하다. 그래도 이번엔 긴장이 덜 된다. 원더풀 우만에는, 꽃봉오리 예술단의 꽃봉오리처럼 사람들의 맹수 같은 시선을 가로챌 수 있는 아이템이 있어서다. 단독주택 안에 10m 길이 실내 수영장이라니, 요즘 말로 이 얼마나 신박하면서도 고급진 꽃봉오리인가. 이 정도면 프로젝트를 소개한 페이지를 덮을 때쯤 사람들의 뇌리엔 수영장만 남게 되리라. 사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토록 특이한 건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첫 미팅에서 건축주가 집에 수영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하길래, 마침 나와 프로젝트 담당자였던 서세희 팀장이 (지금은 삼삼건축이란 이름으로 독립한, 어엿한 서 소장이다) 둘 다 수영에 진심이었던 관계로 그 말을 신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수영장을 넣으려고 보니, 접근성이 좋은 1, 2층은 상가가 되어 마땅했고, 주택으로 사용해야 할 3, 4층 중 일조권 사선제한을 받지 않는 3층에 주택의 주요 생활공간을 넣는 것이 절대적으로 효율적이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4층에 수영장을 배치하게 되어 건물 전체가 수영장을 이고 있는 꼴이 됐다. 박공지붕 아래 공간을 오롯이 차지하자 수영장은 이 건물에서 신전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공간이 됐다. 간접조명만으로 은은히 빛나는 천장 아래, 길쭉한 수조에 물이 찰랑거리는 모습은 왠지 엄숙한 기분이 들게 한다. 수영장이라는 새로운 용도의 공간을 만드느라 디테일부터 재료 선정까지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완성을 향해 나아갈 때마다 그만큼의 심적 보상을 받았던 작업이기도 했다. 수영장이라는 꽃봉오리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이 집은 특이한 점이 적지 않다. 일단 3, 4층의 주거 공간을 위한 현관이 1층에 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다음 주택용 승강기를 타면 바로 3층의 부엌 겸 식당 공간에 당도한다. (이 특이한 구조 때문에 승강기 사용승인을 받느라 오래도록 애를 먹어야 했다.) 그리고 폭 2m, 길이 10m짜리 수조는 윤구조기술사사무소 황윤선 소장의 아이디어로 건물 전체에서 보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 됐다. 하나의 쓸모만을 가질 뻔했던 것에 아무런 변형 없이 또 다른 중요한 쓸모를 더하다니, 너무나 근사한 일이다. 빈 공간으로 남아 있던 1, 2층엔 최근 소현문이라는 이름의 갤러리가 둥지를 틀었다. 원더풀 우만의 테마 색이라고 할 수 있는 검붉은 팥죽색을 존중하면서도 나름의 개성적인 인테리어로 공간을 꾸미고 섬세한 작품들을 조곤조곤 걸어 놓았다. 이 갤러리의 기획으로 수영장에서도 공연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이 집의 쓰임새는 설계자인 내 손을 떠나서 멋지게 비상하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여러 천재들의 도움 덕분에, 나 혼자서 발표할만한 프로젝트 퀄리티를 만들어내는지 두고 보겠다던 얄미운 승환 소장 보란 듯 다시 「SPACE」에 소개 글을 쓴다. 그런데 또 주택이다. 이건 불행인가 다행인가. 부디 수영장만 봐주시길. <SPACE> 2023년 9월호에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