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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버 등 외부차양, 건축물 디자인 가치 드높인다 | 박선민 / <차양> 기자

두 소장이 낳은 또 하나의 자식, 매곡도서관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의 이승환 소장(이하 이 소장)과 전보림 소장(이하 전 소장)은 부부건축가다. 각각 조경학과 조소학을 공부하던 이들은 학사편입을 통해 건축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며 건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국내 여러 아뜰리에에서 실무 경험을 익히고, 이후 지난 2009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 런던 메트로폴리탄 유니버시티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다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5년간의 영국생활은 공부보다도 건축가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던 계기이자 선진국의 사회시스템을 몸소 경험하면서 공공건축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기름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처음부터 공공건축가로 활동할 계획은 아니었다는 그들이 본격적으로 공공건축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고, 우리나라 공공건축에 존재하는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지난 2015년 7월, 울산 매곡도서관의 설계공모가 당선되면서다. 매곡도서관은 두 소장이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한 이후 첫 설계작이자 첫 완공작이기도 하다.
"매곡도서관은 제 아이와도 같아요. 우리 사무실 백일 때 시작해 14개월에 설계를 마치고, 이후 두 돌 4개월 만에 완공된, 자식만큼이나 기특하고 특별한."
그리고 매곡도서관으로 이 소장과 전 소장은 지난해 2017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대상, 2017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 2017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7 울산광역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 및 심사위원들은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한 매곡동 일원에 매곡도서관을 건립해 지역 주민의 여가와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도시재생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며 "특히 책의 숲을 가족과 함께 산책한다라는 설계 개념이 잘 반영되어 기존 도서관과 차별화된 외관이 특색 있다"고 평가했다.

목재무늬 수직루버, 디자인적 요소 부각
매곡도서관의 주 입면은 대지 앞을 흐르는 신천천에 길게 면하고 있다. 이 소장과 전 소장은 매곡도서관 프로젝트를 계획할 당시, 이러한 좁고 긴 천변의 대지에 수직의 요소가 넓게 퍼져 있는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전체적인 입면에 수직의 요소로 리듬감을 조성하고 균형감 있는 분할을 주고자 한 것이다.
"수직적 요소인 루버를 활용해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입면을 적절하게 분할한 것이에요. 수직루버는 외부 입면의 모습과 열람실 내부 환경을 고려했을 때 우리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선택이었죠."
이 소장과 전 소장의 고민과 정성이 담뿍 담긴 건물의 입면을 살펴보면, 수직 방향으로 연출한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와 나무 재질이 입혀진 알루미늄 루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도서관 건물이 숲과 어우러지는 외부공간의 일부로 읽혀질 수 있도록 한 두 소장의 의도이다. 아울러 루버의 간격, 각도, 두께와 폭을 달리 구성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는 평이다.
"시각적인 질감을 건물을 따라 걸어가면서 다채롭게 연출하고 싶었어요. 입면 자체가 살아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거죠. 고정된 설치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보는 각도, 태양 각도 등에 따라 건물 입면이 시시각각 변하도록 말이에요."
한 도서관 이용자는 "밤이 되면 루버를 통해 새어나오는 실내 빛이 낮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건물을 마주할 때마다 다이나믹한 인상을 받는다"고 전했다. 동시에 수직루버를 통해 디테일하게 표현된 복잡성이 현대적 도서관으로서의 성격도 암시한다는 것이 두 소장의 설명이다.
물론 매곡도서관의 입면을 수직루버로 연출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 매곡도서관을 설계할 당시만 해도 앞이 막막할 정도로 루버의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 국내에 루버를 이용한 건축물이 최근에 들어서야 증가하는 추세라고 두 소장은 전했다. 게다가 공공건축 공사비가 프라이빗 건축에 비해 대략 25% 가량 적어 그로 인한 예산 문제도 부담이었다. 이 때문이었을까. 매곡도서관에 대한 비평 중, 건물 앞면에만 지나치게 신경 쓰고 뒷면은 버려진 느낌이 강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전 소장은 "공공건축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요. 예산은 적고, 수직루버는 우리 건축물의 상징이었죠. 때로는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설명했다.

차양, 옵션으로 머물러있기에는 '큰 가치'
이 소장과 전 소장은 매곡도서관 이외에도 현재 준공을 앞두고 있는 언북중학교 다목적강당을 비롯한 다른 건축물에도 루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문화가 직면하고 있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루버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등 국내 건축물을 살펴보면 대부분 벽과 창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건축물에서 커튼월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해 두 소장은 커튼월이 동반하고 있는 환경 문제와 더불어 디자인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그들은 또 다른 대안으로 루버를 제안했다.
"일단 루버라는 스킨 뒤에 벽과 창을 숨김으로써 건축물의 이분법적 구분을 중화시킬 수 있어요. 또한, 자그마한 디테일로 건축물 디자인을 무궁무진하게 차별화할 수 있고요. 건축물의 외피로서 루버는 가능성이 매우 커요. 다만 더블스킨이기 때문에 그만큼 시공비가 많이 든다는 측면도 존재하죠."
또한, 이들은 올해 전북 남원에 패시브하우스 형식의 주택을 설계하면서 외부차양의 효과를 절실히 실감했다고 전했다. 동시에 외부차양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수준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패시브하우스가 추구하는 바가 에너지 절감이기 때문에 외부 차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해요. 하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크고, 아직까지는 외부차양을 적용한 건축물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많은 건축주들이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어요. 언론에서는 외부차양의 유무가 결정하는 냉난방비 차이를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언급해야 하고, 차양산업 관계자들은 본격적인 마케팅을 위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보급률을 대폭 늘려 외부차양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건축주의 여건만 된다면 외부차양을 적용해 건축설계를 하려고 해요."
특히 이들은 외부차양 활용을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차양업체가 건축가들에 대한 기술적인 지원과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건축의 경우 국산, 그중에서도 중소기업의 제품을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관련 업체 수와 제품 종류가 제한적이라는 것.
"건축가로서 가장 원하는 것은 외부차양이 들어갔을 때 건물의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요소가 될 수 있도록 차양 업체에서 기술적 디테일 지원을 해주는 것이에요. 더 나아가 초기 제품 개발 단계에서 건축가와 콜라보를 해 특화되고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차양을 만들 수도 있고요. 보다 다양한 디자인의 외부차양을 공공건축물에 적용시킨다면 건축물 뿐만 아니라 적용 차양에 따라오는 홍보효과도 기대되는 부분이에요."
젊은 건축가와 늙은 건축가 사이에 있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이는 그들, 나이에 비해 사무실을 개소하고 설계프로젝트를 시작한 시기가 조금은 늦지만 삶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건축가의 역할을 지켜나가고 있다. 끝으로 이 소장과 전 소장은 건축가로서 외부차양이 언젠가 한옥의 처마와 같이 건축물의 필수 요소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차양> 2018년 9월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