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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알_인터뷰와 토론

앞선 실무 경험에서 얻은 것은?_디테일, BIM

전보림_대학원 졸업 후 M.A.R.U.에 입사 지원했다. 건축 디테일이 좋은 사무실에 가서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디테일에 꾸준히 관심이 있었고, 디테일이 좋은 건물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M.A.R.U.에서 5년 정도 일하면서 건축가로서의 태도,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태도, 일하는 방식도 배웠고, 거기서 경험했던 프로젝트들도 좋았다.

이승환_나는 작은 규모라도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작은 사무소로 진로를 결정했고, 아뜰리에17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뜰리에17은 M.A.R.U.와 대조적인 부분이 많았다. M.A.R.U.는 충분한 작업 시간을 확보해 건축주에게 요구할 것을 제대로 요구했다. 디테일도 내·외부의 다양한 레퍼런스를 프로젝트별로 소화해낸다. 아뜰리에17은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나 독창적인 재료를 시도하는 면이 좋았지만, 디테일까지 충분히 연구할 시간을 확보하진 못했다.

건축사 자격시험과 두 아이의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전 소장은 한동안 일을 쉬었고, 나는 해안건축으로 옮겨 여러 프로젝트를 거친 뒤 세빛섬 프로젝트의 세 번째 섬을 맡게 되었다. 이때 BIM의 개념을 처음 접했다. 2009년 영국 유학 후 런던의 공공 부문 중 지하철역 설계를 주로 하는 사무소에 들어갔다. 마침 사무실이 BIM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분위기 속에서 2년 반 정도 일했다. 이런 경험을 쌓으면서 일인 설계사무소 시스템을 만드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지만, BIM을 쓰면 효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했고, 웬만한 주택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사무소를 연 계기는?_귀국

이승환_영국 생활 자체는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늘 정시에 퇴근할 수 있었고, 여름 휴가는 한 달이 주어졌고, 이때 유럽 여행을 다녔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계속 허전했다. '건축가로서의 꿈은 이렇게 접는 건가?' 싶었다. 영국에서 현지 건축사를 따기에는 나이도 많고 다시 반복해야 하는 과정도 많아서 현실적으로 시작할 수 없었다. 또 한편, 영국에서 설계사무소를 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아무래도 영국의 텃세를 이기지 못해서 가진 실력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래서 내 일을 하려면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영국 생활 5년째 되던 2014년에 결심을 하고 가을에 귀국, 겨울에 사무소를 열었다. 곧 이은 2015년 봄, 울산 매곡도서관 설계공모에 당선됐다. 인력을 끌어모아 몇 개월 동안 고생하면서 완성했다. 사실 매곡도서관 이후 도전한 설계공모에서 줄줄이 떨어지면서 설계 일에 회의가 들던 때였는데, 매곡도서관을 완공하고 신진건축사대상을 받으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우리가 한 일이 인정받을 수 있구나, 지금까지 해온 방향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겨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지향점이 있다면?_공공성

전보림_우리는 공공건축 시스템 안에서 건축가로서 해야 하는 역할과 업무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관습과 싸워가며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예를 들어 설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용역 범위에 없는 사이니지 디자인을 해서 내역에도 포함시켰고, 직접 감리를 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면도 더 많이 그렸다.

우리가 투쟁 끝에 만들어낸 작업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결론적으로 더 나은 건물을 지으려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어서다. 글을 많이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건축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런 시도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불합리한 점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승환_민간 건축, 특히 상업 건물에서도 상업성과 공공성이 일치될 때 시너지 효과를 강하게 낼 것 같은데, 건축주들은 그 사실 잘 모른다. 임대공간을 줄여 공공공간으로 내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공공에 내주는 만큼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고 상업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을 건축가가 결과로 증명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작업을 돌아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너무 이른 시기에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내세우는 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서너 개의 준공작과 여러 계획안을 리뷰하면서 정리해보니, 배경이 되는 건축', '미디엄으로서의 건축'이라는 말로 우리 작업을 설명할 수 있었다. 젊은건축가상 심사평에도 그런 면이 언급됐다. 이번에 수상한 건축가들의 특징을 심사위원들은 '작가주의를 지양하는, 작가의 자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작업'이라고 했다. 우리한테도 해당되는 말이다. 주어진 조건을 합리적인 공간으로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 기본적인 문제들을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고 거기에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배어 있는 건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조차 이뤄내지 못하는 건물이 많다.

교육청 프로젝트_공공성

전보림_서울시 교육청 일을 하면서 과연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건물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짓는다고 해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과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교육 공간의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물론 건축 공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중요하지만, 학교 시스템이 함께 바뀌지 않은 공간 개선만으로는 지금의 후진 교육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청중A_한국에서 건축 디자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단어가 '창의성'과 '안전'인 것 같다. 소규모 건축물 감리 분리 제도 논란 때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한 건물의 공사 감리를 하면 건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반대 측 의견이 크게 작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무심결에 생각하는 '더 단단한 재료', '더 안정적인 재료'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유리 난간에 강화 필름을 붙이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굳이 철제 난간을 만들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그 막연한 '안전'이란 단어가 건축물의 디테일을 망치는 것 같다. '창의성'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비워진 공간에는 미술 교사나 색채 전문가가 와서 무지개를 그려넣을 것이다. '창의성', '공간 개선', '환경 미화' 같은 단어들에 건축은 쉽게 훼손된다.

이승환_실제로 공공 건축물에서는 커튼월 앞에 난간을 다 설치하더라.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공사 전에 디자인해서 도면에 넣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추가할 필요가 있으면 건축가에게 의뢰하면 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청중B_앞으로 교육청 프로젝트를 맡을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 현 시스템에서 찾은 돌파구가 있는지 궁금하다.

전보림_교육청 주무관은 늘 자기가 같이 일해온 업체에 그냥 일을 맡겨 버릇해서 정작 본인은 업무를 설명할 줄 모른다. 뭔가를 물어보면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면박만 줄뿐이다. 그런 상황이 하도 억울해서 우리는 '교육청 프로젝트 업무 요령'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관련 일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웃음)

교육청 프로젝트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결제를 학교와 교육청 두 군데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둘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면을 활용해서 조금이라도 말이 통하는 쪽을 우리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항상 학교를 지원군으로 삼았다. '열심히 하겠다', '믿어달라'며 건축 전문가로서 우리를 신뢰해달라는 뜻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다행히 학교장들은 우리가 사심 없이 열정을 갖고 프로젝트에 임한다는 걸 믿어줬다. 건물의 완성도는 건축가가 얼마나 상세하게 내용을 정하고 그대로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그 결정과 승인 과정에서 학교장 사인이 있는 문서는 보증수표와 다름없다.

구상하고 있는 조직의 모습은?_BIM과 함께

이승환_사실은 매해 직원을 늘려가면서 일도 개수와 규모도 키워가야 사무실이 발전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우리에게 그런 시스템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두 소장, 많으면 한두 명 정도의 인력을 더해 우리 내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고, 그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BIM을 활용한 일인 설계사무소 시스템은 현재로서는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도면의 퀄리티를 생각하면 BIM으로 생산한 도면은 뒷정리할 거리가 너무 많다. 우리는 BIM 모델 중간에 캐드 도면을 생성해 모델링과 도면 작업을 각각 진행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서로 참조해서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도면에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시공에 문제 없다면 현장에 내보내고 효율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도면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시간을 더 쓸 것인지는 앞으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다만 3D 모델링과 건축 디테일을 모두 꿰고 있는 상태에서 BIM을 활용하면 설계가 복잡해도 자신 있게 도면을 그릴 수 있다. 매곡도서관을 예로 들면, 경사면을 따라서 보가 계속 꺾이고 기초도 어렵다. 이 프로젝트는 BIM 모델링이 아니었다면 구조를 그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물 모형 작업은 거의 하지 않는데, 모형은 눈 앞에 보이는 스케일이 있어서 판단을 하기 어려운 반면 3D 모델은 키웠다 줄였다, 뷰를 바꿔보면서 종합적으로 공간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건축가들 2>(마티정림건축문화재단 | 2020)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