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 복합화 대형화, 과연 정답인가 | 이승환 지난 1월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 공공건축 심포지엄이 있었다. 행복도시 공공건축가들이 모여 지금까지 행복도시 내에 지어진 공공건축을 평가하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토론하는 자리였다. 나는 소그룹의 간사가 되어 그룹 내 주제 발제를 조율하는 동시에 직접 한 꼭지를 준비하고 발표하는 일을 했다. 나를 포함한 여러 공공건축가들이 쓴 소리를 냈는데, 사실 그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도시, 세종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방문하는 사람들의 시각과 거주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서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세종시를 몇 번 방문하고 답사한 사람으로서 느낌을 말하자면, 현대적인 신도시임에는 틀림없지만 건축물 하나하나가 크기와 형태로 보행자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친밀함을 느낄 만한 구석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세종시의 가로 블록은 기존 도시의 블록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물론 이는 세종시뿐 아니라 최근 지어지는 신도시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보통 도시 설계의 중요한 결정들은 지구 단위 계획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땅을 팔고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 도시의 기본 얼개를 만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토지주택공사(LH)가 땅을 크게 잘라 파는 것을 선호하고 주택 공급의 대부분을 고밀도 공동 주택에 의존하는 방향을 고수하는 한, 앞으로 우리나라 신도시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지구 단위 계획의 이런저런 지침은 이렇게 결정된 큰 틀에 디테일을 더할 뿐이다. 나의 의문은 도시가 이렇게 메가 스케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건축도 그걸 따라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민간을 규제할 수 없다면 공공건축만이라도 인간 중심의 스케일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법도 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작년 말에 발의되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공공건축특별법」에는 공공건축의 복합화, 대형화를 유도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법안은 그 근거로 재정 부담 경감, 토지 이용 효율화, 이용 편의성 제고를 들고 있는데, 이런 항목들만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겠다. 세종시는 이런 흐름을 선도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 최초로 모든 생활권에 각종 행정과 복지, 편의시설이 하나의 건물에 집약된 복합 커뮤니티센터를 도입하였다. 실제로 사용자 평가를 실시해도 주민들의 만족도 또한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높은 만족도가 과연 ‘복합’에 대한 만족도인지, 아니면 모든 시설이 한꺼번에 충족되는 데서 오는 만족도인지 일반인이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도서관 간 김에 인감증명서도 떼어 오고, 그러면서 옆집 아무개를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소소한 이점이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복합 커뮤니티센터의 거대함이 도시를 삶으로부터 떼어놓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공공시설이 한데 모임으로써 어떤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진다면, 굳이 한 건물에 꾸역꾸역 몰아넣지 않고도 커뮤니티 가로를 만들거나 한 필지 안에 여러 개의 동을 만들고 임대 상업 시설과 섞어서 활기찬 거리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건축가로서 아무래도 여러 용도가 복합된 건물을 설계하다 보면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울 테고, 도서관이나 체육관처럼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개별 공간이 아닌, 여러 개의 중립적인 공간을 요구된 면적에 맞추어 배치하고 끝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공공건축을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만들어내야만 하는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도시 계획의 고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활기찬 도시를 만드는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건물 내부가 아닌 도시 가로에) 여러 용도를 섞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을 한 장소에 있게 하고, 블록을 작게 만들어 모퉁이를 돌 기회를 자주 만들며, 햇수와 상태가 다른 다양한 건물을 섞고,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이 오밀조밀 집중되게 만든다. 세종시는 우리나라 지방 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이다. 그런데 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텅 비어 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갈 데가 없어서도 아니고, 도로가 좁아서도 아니다. 건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복합화되고 대형화된 탓에 거리가 아니고 건물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집도, 상가도, 공공시설도 모두 거대한 건물에 블록처럼 들어가 있다. 그렇게 해서 그러모은 외부 공간은 건축선 후퇴로, 공동 주택 조경으로, 관공서 앞 광장으로 아낌없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걸어 다닐 공간은 너무나 많은데, 걷기가 싫다. 아기자기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 길은 오래 걸어도 지겹거나 힘들지 않다. 반면에 아무리 넓어도 볼 것이 없고, 찻길 맞은편으로 가려면 몇 분씩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광활한 차도를 꾸역꾸역 건너야 하는 길은 정말 걷기가 싫다. 건물과 도시 간 밀도의 불균형이 너무 심한 것이다. 이런 도시를 만든 사람들은 보행 친화 도시라는 개념을 거꾸로 배운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일단 경제 논리로 만들어놓고 브랜딩이나 네이밍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것이거나. 공공건축은 올바른 정책이 있으면 민간의 반응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만들어진 도시 구조를 당장 바꿀 수 없다면, 공공건축이 앞장서서 그 구조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문제점을 중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세종시가 좀 더 건물을 나누고 흩뿌려서 이런저런 골목 이야기가 담긴, 걸어 다닐 맛이 나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커뮤니티 시설의 복합화가 필요하다면 건물 안에 욱여넣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가로에 펼치는 방식으로 한 단계 더 큰 도시 차원에서 복합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공공건축을 자꾸 거대하게 만들고 아예 법안에도 못 박아 전국에 퍼지게끔 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건축학회지 <건축> 2020년 4월호에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