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답을 구하다 <서패동 꺾인집> | 취재 이새미 “집 짓기는 저희와는 무관한 이야기라 여겼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대개 그렇듯 출퇴근과 주차가 편한 아파트가 내 집 마련의 목표였죠.” 영화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백준오 씨 부부는 지난해 파주 서패동에 집을 지었다. 부부는 3년 전, 사무실 공간 확장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주거와 업무를 겸할 수 있는 서울 마포 일대의 낡은 구옥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통이 편리한 지역은 경매에 올라온 작은 무허가 건물마저 엄두를 낼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이 아니었고, 신축을 고려한 20평 내외의 자투리땅도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따지면 원하는 규모로 건물을 짓기가 어려웠다. 결국 서울을 포기하고 회사가 있는 파주출판도시 인근에서 반년 넘게 발품을 팔며 심학산 자락에 위치한 지금의 필지를 구했다. 집 속에 작은 영화관을 짓다 서패동은 파주출판단지와 교하 지구 사이에 위치하고, 다양한 편의시설이 인접해 있어 생활하기에 괜찮았다. 땅을 구입한 뒤 부부는 본격적으로 건축가를 찾아 나섰다. 주위에서 소개도 받고,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봤지만 그들의 화려한 포트폴리오는 부부가 생각하던 집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 당시 언론에 소개된 2017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작인 울산 매곡도서관을 설계한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를 발견했다. “공공 건축물이었지만 루버로 모양을 낸 외관과 모던한 공간 디자인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런 분위기의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특히 무엇보다 전보림·이승환 소장이 설계를 하며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기록한 블로그 글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모든 글을 정독했어요. 이승환 소장님이 쓴 ‘건축설계비 산정의 진실’을 보고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도 생겼지요. 설계비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조심스럽잖아요. 누구에게 선뜻 물어보기도 어렵고요. 건축가로서 쓰기 쉽지 않은 글인데 좋은 공간 설계를 위한 현실적 설계비 산정에 대한 소신있는 글이 건축계에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오히려 믿음이 생겼어요.” 그는 두 소장에게 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를 위한 생활 공간과 직업상 필요한 수준급의 홈 시어터룸을 요청했다. 구입한 서패동 필지는 생산관리 지역이라 건폐율이 20% 밖에 되지 않았고, 필지는 끝이 뾰족한 오각형 모양이었다. 두 소장은 건폐율에 맞춰 중간이 꺾인 형태의 평면도를 설계했다. 1층과 2층을 합쳐 연면적 126㎡ 규모로, 1층은 주방·거실과 작은 작업실이 있고, 2층은 침실과 AV룸, 복도와 테라스로 구성했다. AV룸은 11.2채널의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사운드 시스템을 구현하고, 전면의 스피커를 스크린 뒤로 숨기는 인비저블 시네마로 꾸며 기능적으로, 공간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집의 묘미는 이뿐만이 아니다. 2층 천장의 꺾인 면은 조명등을 켜면 빛의 라인이 드리워져 근사한 조형물이 되고, 외관의 창 프레임은 빛에 따라 그림자가 시시각각 변한다. 건축가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기술성과 예술성이 만나는 접점이 집 안 곳곳에서 드러난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최첨단 스마트홈 서패동 꺾인집은 에너지 효율을 높여주는 패시브 하우스다. 파주는 에너지 절약 설계 기준 중 중부 1지역에 속해 단열 기준이 높은데, 고단열·고기밀의 패시브 공법으로 설계하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해 1년 내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다. 또 홈 오토메이션 시스템을 적용해 조명과 냉난방 시스템, 전동 블라인드 등을 스마트폰 하나로 작동할 수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삶의 질을 높여주는 최첨단 스마트홈인 셈이다. 이제 조경만 남은 상황. 은퇴한 노부부에게는 정원 가꾸기가 로망이겠지만,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이 부부에게는 최대한 손이 덜 가는 정원이 필요했다. 건축 막바지 즈음이어서 비용 면에서 고민이 많았지만, 집을 잘 지어놓고 조경까지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으면 후회한다며 시공사 대표가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자연주의 조경을 실천하는 연수당 조경의 신준호 대표로, 그는 다년초와 야생화가 어우러져 제주의 숲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원을 디자인했다. 움푹 파인 곳에는 비가 오면 빗물이 고여 작은 연못이 생긴다. 바쁜 일상에 정원을 돌볼 틈이 있을까 했는데, 신기하게도 새벽에 눈이 떠지면 정원으로 나가볼 만큼 그곳에 만들어진 작은 생태계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잘 디자인된 공간이 만드는 삶의 변화를 체감하곤 언젠가는 작은 사옥도 지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전원주택 하면 소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물론 집 짓기가 적은 비용이 드는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겁니다. 현실적 예산 안에서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아파트에서 누릴 수 없는 재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고요. 꼭 큰 집일 필요는 없어요. 가족이 좋아하는 공간을 파악하면 콤팩트하면서도 낭비 없는 집을 지을 수 있고,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Interview: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전보림·이승환 소장 '모호한 땅이 주는 건축설계의 즐거움' 건축가로서 본 이곳 필지는 어떤가요? BR 오각형 모양의 불규칙한 필지인데, 뾰족한 모서리 부분을 아담한 포켓 마당으로 활용했어요. 땅의 특징을 살 리면 오히려 더 재미있는 설계가 나올 수 있습니다. 건폐율은 20%로 낮은데, 이걸 단점이라 할 수 없어요. 오히려 건폐율이 낮으면 그만큼 외부공간이 넓어져서 쾌적하고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패시브 하우스로서 어느 정도의 성능을 갖추었나요? SH 별도의 패시브 하우스 인증을 받진 않았어요. 인증을 받으려면 단열 기준을 더 높이고 고가의 기밀성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데, 그보단 실내에서 쾌적하게 생활하는 데 중점을 두고 디자인과 시공 난이도를 고려해 작업했습니다. 건축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요? BR 건축가의 롤이 설계 도면을 그리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건축가는 건축주의 삶을 알아야 하고, 시공사 선정부터 공사 과정의 확인, 중간에 벌어지는 많은 일에 대응하지요. 집 짓기는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경험인데, 설계 서비스의 범위를 너무 한정 짓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지불한 만큼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고, 설계 서비스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예비 건축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SH 설계에서는 도면뿐 아니라 재료의 스펙이 굉장히 중요해요. 건축주에게는 시공사와 정확한 계약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소스이지요. 자재에 따라 5억 원짜리 집이 될 수도 있고, 10억 원짜리 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희는 돈을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재는 비용이 들더라도 건축주에게 권하는 편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결코 사치가 아니니까요. <행복이 가득한 집> 2021년 10월호에 게재 |